우리나라 역사를 보는 눈을 기르려면...

난 역사를 공부하는 것이 즐겁다.
다른 사람들도 그러했으면 좋겠다.
많은 사람들이 역사공부는 따분하고 재미없다고 하지만,
그 들 중 거의 대부분이 제대로 공부한 적이 없어서 일지도 모른다.
학교에서 시험만을 보기위해 억지로 하고있으니까......

그래서...................

역사를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는 블로그를 몇개 소개하려 한다.
읽는 사람에 따라서 조금 어려울 수도, 재미가 없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역사를 바로 보는 눈을 기를 수 있을 것이고,
그 연후에 역사공부가 재미있다는 것을 시나브로 알 수 있을것으로 생각한다.

요즘 주위에 우리나라 고대사에 대하여 허황된 시각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과,
주몽, 연개소문, 대조영 등
대하사극이라 사기치는 판타지 드라마들이 공중파 방송3사에서 방영중이고,
100부작 단군, 욘사마 주연의 태왕사신기 등의 판타지물이
방영 예정이라 하는데,

일단 바른 눈을 지니고 난 이후에
드라마는 드라마로서만 받아들일 수 있는 지혜를 가졌으면 한다...

다음은 이글루스 블로그이다
강단사대모화친일식민사관(클릭)
http://hkh336.egloos.com

초록불의 잡학다식(클릭)
http://orumi.egloos.com

그리고
조선왕조실록(클릭)
http://sillok.history.go.kr/main/main.jsp

승정원일기(클릭)
http://sjw.history.go.kr/main/main.jsp

국사편찬위원회(클릭)
http://www.history.go.kr

국가기록유산(클릭)
http://www.memorykorea.go.kr

한국역사정보통합시스템(클릭)
http://www.koreanhistory.or.kr


이 밖에도 화면 옆쪽에 링크되어 있는 블로그들은
거의 대부분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사람들의 블로그이다.
읽는 것은 자유, 내용에 대해 수용하는 것도 자유...... 

by 홍비홍신랑 | 2008/12/31 23:59 | 공부하세요!!! | 트랙백 | 덧글(7)

종부세를 기쁘게 내야 하는 까닭....

종부세를 기쁘게 내야하는 까닭(클릭)

며칠 전 종부세 관련 포스팅을 했는데
내 견해와 거의 일치하는 기사를 읽게 되었다.
출처는 오마이뉴스.
오마이뉴스는 내가 좋아하는 언론 매체가 아니다.
하지만 매체의 성향이 다르다고 해서
그 매체를 통한 기사를 싸잡아서 부정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해서 맨 위에 링크해 두었다.
찌라시 기사들을 읽을 때면
'저것들도 기자라구....저 정도는 나두 발로 쓰겠다..'라고 생각했는데
내 좁은 소견과 편견이었다는 것을 요즘 새삼 깨닫는다.
좋은 기자들도 많다....

글 정리가 잘 되어있다.
본문 찬찬히 읽어 보시고,
시간 나면 덧글도 읽어 보시고,
욕하실 분들은 욕도 한마디 하시고,
기사의 맨 위에 있는 사진속의 단체에
가입하고 싶은 분들은 가입하시고.....

버티고 있으면 안낼 수 있을까?
미국에서는 피할 수 없는 것이 딱 두가지 있는데
하나는 죽음, 또 하나는 세금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고액체납자들이 엄청 많다지?
좋은나라운동본부에 나오시던
38기동대 여러분, 힘내시고
체납된 세금 100% 징수에 좀 더 힘을 써주시길....

조세저항?
췟!!! 말이되는가?
죄다 국가모반죄로 쳐 넣어야.....(심한가 ㅡㅡ?)
납세는 국민의 4대의무 중 하나란 말이다. 이 한심한 사람들아....

P.S 제발 나도 종부세 한 번 내 봤으면 좋겠다.
      단, 대상이 된다면........
      얼마나 지나야 낼 수 있을까?

by 홍비홍신랑 | 2007/03/18 13:07 | 뉴스 | 트랙백 | 덧글(1)

박지성은 왜 내가 못 볼때만...ㅠ.ㅠ



어제 박지성이 한 경기에서 두 골이나 넣었다고한다.
난 박지성이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해서
골 넣는 장면을 단 한차례도 실시간으로 본 적이 없다.
어제도 물론 예외도 없었다.
중계 날짜를 잘못 알고 있었다. 오늘 저녁으로.....ㅠ.ㅠ
물론 어제는 알았다 하더라도 볼 수가 없었지만....
아침에 일어나서 인터넷을 살펴보니 난리가 났다.
호평들이 쏟아지고, 스카이스포츠 평점도 8점이나 받았고...
난 올림픽 대표 시절부터 박지성 팬이다.
단지 그 때는 빠르기만 한, 가능성 있는 선수일 뿐 이었는데.
지금은 가히 우리나라 국가대표 에이스에
세계적으로도 수준급 선수로 성장했다고 말하고 싶다.(내맘이다...^^)
물론 지금도 드리블이나 볼 트래핑이 세계 정상급은 아니지만
맨유에서 뛰고 있다는 것이 어딘가?
맨유라는 팀이 세계 정상에 있는 팀은 아닐지라도,
정상'급' 팀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첫 골은 거의 환상적이다.
호날두의 완벽한 볼처리에 이은 입이 쩍 벌어지는 드리블 돌파,
긱스와 루니의 움직임, 빈 곳을 정확히 찾아 들어가는 박지성의 움직임,
거기에 박지성의 슛을 피해 점프하는 루니의 마지막 움직임까지....

하지만, 아쉬운 것은 박지성이 두 골이나 넣고도
활약이 호날두의 엄청난 활약에 묻혀버리는 듯한 분위기이다.
짧은 동영상에서도 그의 진가가 여실히 드러나기에,
할 말은 없지만, 그냥 아쉽다는 거지.....

호날두가 출전한 맨유의 경기를 볼 때면
정말 감탄이 절로 나오는 경우가 많다.
단지 흐름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선수가 아니라
경기 전체를 지배한다고나 할까?
전반기에 있었던 첼시와의 경기에서 애슐리 콜에게 완벽하게 묶이고,
챔스리그 16강 OSC릴과의 1차전의 부진을 제외하면,
한 시즌 내내 거의 완벽한 모습만을 보이고 있는 것 같다.
물론 내가 본 경기에 한해서, 또 내 주관적인 관점에 의해서이다.
어쨌든 대단한 선수임에는 틀림이 없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을 것 같다.

다시 박지성으로 돌아오면,
박지성은 저 대단한 호날두나 루니보다 나이가 많다.
성장할 가능성이 저 선수들 보다는 상대적으로 적을 것이다.
루니야 포지션이 완전히 다르기에 별 문제가 될 것이 없지만,
호날두는 당장 직접적으로 주전 경쟁을 해야한 하는 포지션이기에
박지성에게 위협적인 존재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만약 내가 감독이라면,
두 선수가 같은 스타일이고, 둘 중에 한 명만 선택해야 한다면
100% 호날두일 것이다.
현재 세계 최고의 선수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선수를
기용하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하지만 둘은 같은 스타일이 아니고,
같은 그라운드에서 공존할 수 있는, 게다가 보완까지 할 수 있는
서로 전혀 상이한 스타일이기에 호날두와의 관계는
걱정할 것이 없다고 보여진다.
포지션을 경쟁하기 보다는,
한 팀으로서 어떻게 해야 효율을 극대화 시킬 수 있는지를
박지성 선수는 연구해야 할 것이다.
굳이 경쟁에서 이기고, 뛰어 넘을 필요가 있는가?

현재 프리미어리그에서 가장 저평가 받고 있는 선수 중의 한명인 박지성...
지금의 평가에 신경쓰지 말고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의 임무만 충실히 한다면
언젠가는 맨유의 레전드로서 기억될 수 있지 않을까?


첫번째 골 장면이다.
낮게 날아가는 박지성의 슛을
루니가 점프해서 피하고 있다.
이 경기에서 루니도 두 골을 넣었는데
루니도 정말 대단한 선수 임에는 틀림이 없다
공이 상당히 빠르게 날아갔는데 저걸 어떻게 보고 피하지?





첫 골 직후의 사진이다. 누가 찍었는 지 정말 죽이는 장면 아닌가?
뒤에 보이는 맨유 관중들...
여기가 올드트래포트가 아니었다면
이런 사진은 나오지 않았겠지?





두번째 골 직후의 사진이다. 긱스와 무슨 대화를 하는지 궁금하다..
표정들은 좋은데...^^




 

by 홍비홍신랑 | 2007/03/18 11:35 | 스포츠 | 트랙백 | 덧글(3)

군삼녀....니가 가라....군대....

 

   요즘 ↑에 나오는 여자애 때문에 말이 많다.
   군대 3년이 적당.....18개월로 뭘 배워.........
   도대체 요즘 여자들은 군대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걸까?
   군대........맞다. 힘들다.
   내 경우는 그랬다.
   몸 보다는 마음이 훨씬 힘들다.
   보고 싶은 부모님, 형제, 친구, 그 밖에 지인들......
   보고 싶을 때 못 보고, 아플 때 특별히 누가 챙겨 주는 사람도 없고,
   그럴때 힘들고 서럽기까지 했다.
   물론 몸도 힘들었지만, 대한민국 남자가 그 정도야 뭐 견뎌줘야지...
   두들겨 맞고, 또 때리고 하는 정도도 뭐 자연스레 받아들여 졌고,
   배우고, 느끼고, 깨달은 것도 많고.....
   뭐 여하튼,
  
1.쟤가 한 말을 남자가 했더라면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왜? 군대를 갔다 온 사람이거나, 가야 할 사람이니까.
   하지만 쟤는 아니다. 말이 되는가?
   경험을 해 보지도, 앞으로도 할 수가 없는 사람이 저런 망발을....
   요즘 군대 좋아졌다고 하니까 정말 물로 보나 보다.
   그게 아니라면,
   뭐 이런 경우를 생각할수도

   좋아하는 남자가 있다.
   그런데 그 남자는 쟤의 친구랑 사귄다.
   닭살 떠는 모습에 정말 서럽다.
   거울을 보니 지 얼굴로는 지 친구한테 상대도 안된다.
   (논란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과연 있을까?) 내 주관적 생각이다.)
   그 남자한테 눈길도 한 번 못 받아보고,
   말도 한 번 제대로 못했는데,
   그가 덜컥 군대를 갔다.
   어차피 지랑 못 사귈바에는 군대에서 돌아오지 마라.
   올꺼라면 최대한 오래 있다가 와라.....

   뭐 대충 이런 마음에 저런 악담을 한 것은 아닐까?
   하지만 저리도 당당하게 말하는 것을 보니
   뭐 이런 반응은 전혀 신경을 쓰지 않을지도....

2. 이번에는 조금 다른 의견이다(난 분명히 남자다).
   분명 18개월은 짧다(분명히 욕을 먹겠지?).
   내가 군대를 갔다왔다고 해서 하는 말은 아니다.
   이것은 분명히 내가 군대에 있던 시절부터 생각했던 것이기에
   그럼 말뚝박지 그랬어?라고 묻는 다면 그건 잘못된 질문이다.
   내가 말 하는 건 직업으로서의 군인이 아니고,
   국방의무로서의 군대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역 때 동원사단에서 근무를 했었기에
   동원예비군훈련을 나갔는데,
   깜짝 놀랬다. 왜? 예비군들의 전투력이 엄청났기 때문이다.
   보기에는 설렁설렁하고, 개념도 없고, 주머니 속에는
   소주가 감추어져 있고, 이런 예비군들이
   현역인 우리의 전투력을 능가하다니.
   주특기(난 155mm견인 곡사포 포병이었음)로 내기를 걸어오는
   예비군들에 맞선 우리 부대 선임들을 붙는 족족 떨쳐버리던,
   그 의기양양한 4년차 예비군(제대한지 5년째라는 말이다)의 모습은...
   날이면 날마다 하는 주특기 훈련을 어찌 예비군들에게 질 수 있단 말인가...
   세월이 흘러흘러 내가 예비군 4년차.....
   상황은 변한게 없고, 오히려 더 떨어진 현역 군인들.....
   군기도 약해지고, 체력도 약해지고,
   전투력도 형편없어진 현역 군인들......
   물론 일부만 그렇다고 해도
   조금 아쉽다.
   시간이 조금 더 흐른 지금은 더 하겠지?
   개인적으로 아는 부사관 한 명이 있는데
   불만이 많다고 한다.
   지금도 애 하나 키워서 좀 써먹을 만 하면
   제대할 때가 된단다.
   그런데 더 줄어버리면, 도대체 어떡하란 말이냐구....
   젊은 시절 아까운 군생활동안의 시간들......
   그 들이 있기에 우리 일반사회의 시민들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편안한 잠자리를 맞이할 수 있는 것인데.
   18개월까지 줄어버린 군대에서
   어영부영 시간만 죽이는 애들이 넘쳐나는 군대를 믿고
   편안히 잠을 자도 괜찮은 걸까?

3. 군기간 단축의 말이 나왔을 때
   다른게 아니라 대통령의 말 때문에 엄청 분노했다.
   분명하게 군대에서 썩는 기간 줄인다고 표현했다.
   일국의 국가 원수의 입에서 그게 나올 말이란 말인가?
   군대에서 썩다니?
   아무리 그게 많은 국민들의 생각이라 해도
   일국의 국가 원수의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면
   그따위로 말을 해서는 절대 안되는 것이었다.
   그럼 대통령 당신은 썩고 있는 애들이 지켜주는 나라의
   대통령이고 별 다섯개짜리 국가 원수란 말인가?
   지난 4년을 말때문에 곤욕을 치렀으면 좀 가려서 했으면 좋겠다.
   나이도 있고, 사회적, 국가적, 세계적 지위도 있는 사람이
   말하는 꼬라지 하고는.....ㅉㅉ
   누가 뭐래도 난 군대에서 썩지 않았다.
   정신력은 강해졌고, 인내심도 늘었고,
   사회에서의 인간관계도 알게 되었다.
   자기가 썩다가 왔으니 다른 이들도 다 썩다가 오는 줄 아나?
  

by 홍비홍신랑 | 2007/03/17 11:05 | 트랙백 | 덧글(10)

유괴범들은 사형도 부족하다!!

"박군 산채로 유수지 던져"<용의자 자백>(클릭)

정말 극심한 분노에 치를 떨었다.
절대 용서할 수 없는 범죄가 있다면,
첫째가 유괴, 둘째가 성범죄, 셋째가 아동에 대한 범죄이다.
(물론 3가지를 한꺼번에 저지르는
정말 짐승만도 못 한 놈들도 있다.)

저 범죄자들은 사형으로도 부족하다.
직접적 피해자 뿐 아니라
주변의 모든 이들에게 동시에 엄청난 고통이 가해진다.
도대체 인간의 탈을 쓰고 어찌 저럴 수 있는가?

사업실패와 유흥비로 인한 빚때문에
아내와 불화가 생겨 범행을 저질렀다고 뉴스에 보도 되었는데,
내 새끼, 내 마누라 중요한 건 알고
남의 자식 중요한건 생각하지도 않았단 말인가?
이건 개새끼도 아깝고, 개만도 못한 새끼도 아깝다.
달리 뭐라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다.

난 개인적으로 저런 범죄자의 친인척들에게는
연좌제가 적용되었으면 좋겠다.
누가 봐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게
'아동유괴범죄자 ㅇㅇㅇ의 장남'
'유괴 및 살인 범죄자 ㅇㅇㅇ의 아버지'등의
표식을 평생 지워지지 않는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곳에
문신으로 새겨놓았으면 좋겠다.
이번 내 생각에 대해 비판은 적극 환영한다.
하지만, 인권 뭐 어쩌고 그러는 글이나
단순 악플은 즉시 삭제할 것이다.

인권?
인권이란 사람에게만 있는 권리이다.
쟤네들은 사람이 아니다.
'사람'이 아닌 것들의 가족이 '사람'인가?
'사람'의 가족이라면 절대 저런 표식을 몸에 지니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 땅에서 저런 악질 범죄를 뿌리 뽑으려면
좀 더 강한 처벌이 필요하다.
살지도 죽지도 못하게 만들어 놓고,
(방법은 많지 않은가?
신체 일부 절단해 놓고, 매일 고문하고-사람이 하기 싫으면 기계로 하고-
아니면 손가락 하나 자르고, 나아갈 만 하면 또 하나 자르고,
손가락 다 되면 발가락, 눈알, 다리도 1센티미터 간격으로 자르고
죽을려구 그러면 어떻게든 다시 살려서 다시 고문하고...등등....)
무기징역에 처한다던가,
아......계속 생각하니까 짜증난다..
저런 나쁜 새끼들 틈에서 33년이나 살아남았다는 것을
감사하고 또 감사할 따름이다.
앞으로 우리 아이는 어떻게 키워야 되나......

P.S 언론은 도대체 왜 저런 자들의 실명을 공개하지 않는가?
      실명을 공개하면 조금이라도 저런 악질 범죄가 줄어들지 않겠는가?

by 홍비홍신랑 | 2007/03/16 19:27 | 뉴스 | 트랙백 | 덧글(6)

아직도 부족하다....하지만....

종부세 논란(클릭)
파파울프님 글에서 트랙백

종부세 납부는 가진 자들의 의무이다
종부세에 대한 논란은 이미 법안이 제정되면서 부터 시작되었다.
재산세와의 이중과세 논란도 있었다고 뉴스에서 보았었는데,
결론은 저러한 반발은 곧 이기주의로 귀결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가진 자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왜 자신들이 못 가진자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가'라고 말 할 수도 있겠지만
난 이 질문에 대하여 '그것은 의무이기 때문이다'라고 답하고 싶다.
그 들은 이미 이 '의무'에 대한 권리를 분명히 누리고 있지 않은가?
부(富)로 인하여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모든 사회적 경제적 혜택은 글자 그대로 혜택이기도 하지만
만약 침해당한다면 그에 대해 분명히 반발할 것이 자명하기에
감히 '권리'라고 하는 것이다.

종부세 낼래? 양도세 낼래?
만약, 누군가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할지도 모른다.
'넌 재산이 없으니까 그렇게 말하지, 너도 과세 대상이라면
그렇게 말 할수 있겠냐?'
솔직히 나 같으면 집 팔고, 땅 팔아서, 집 값 싼 동네로 이사간다.
좋은 차 한대 사가지고......
그게 싫다면, 도심에서 조금이라도 더 가까운, 게다가 교육환경도 좋고,
편의시설이 조금 더 많은 곳에서 편안한 생활을 누리고 싶다면,
어쩔 도리 없는 것 아닌가?
세금 낼 것 다 내고, 그냥 사는 수 밖에.........
집을 팔고 싶어도 양도세가 무섭다고?
말도 안되는 소리 하고 계십니다.
권오규 경제부총리 주장대로
그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다고 할 수 있다.
상승한 집값에 비례해서 책정되는 양도세에 대해
공부 더 하시고 그런 주장 하시기를....

난 현정부 지지자가 아니다
난 현 정부에 대해 상당히 큰 반감을 가지고 있고,
비판적이기도 하지만, 이번 정책에 대해서는 적극 지지할 뿐만 아니라
더 강도 높은 정책을 펼칠 것을 요구하고 싶다.
해당 정부 실무자들은 과연 현재 부동산 시세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가?
서울시내에서 가장 집값이 싸고 낙후되어 있다고 하는 중랑구만 해도
아파트가 밀집되어 있는 신내동의 경우
단지마다 집값 담합을 유도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우리 아파트의 적정 거래가는 평당 1500만원~2000만원 입니다'
국민주택 수준인 34평형의 경우(난 딱 반만한 곳에 살고 있다)
최하로 잡아도 5억1000만원이고 최대로 잡으면 6억8천만원이다.
물론 단지의 위치나 노후도에 따라 차이는 조금씩 있겠지만
저 정도가 평균이라고나 할까?
물론 실제 거래가는 저기에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저 현수막이 집값 상승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 것 만은 사실이다.
저런 행위에 대해서 적발 시 무조건 공시지가 확정하고, 세금을 부과 한다면,
누가 감히 저럴 수 있을까?
한낱 소시민에 불과한 내 개인적 견해로는
돈은 없고, 겁은 많은 강북 낙후 지역 주민들은
세금폭탄이 무서워서라도 저러지 못 할 것 같은데......

없는 사람 살려주는 방안의 법제화를.....
모든 정책에는 맹점이 있기 마련인데, 이번에도 물론 예외가 아니다.
가령, 5억9천만원짜리 집을 3채 보유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이 사람의 실제 부동산 보유액은 17억 7천만원이지만,
이 사람도 바보는 아닐테니 분명히 명의를 분산시켜 놓았을테고,
이번에는 과세 대상에서 제외될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누가 봐도 재산가 일텐데도 말이다.......
현행법상 문제가 없으니 이 경우는 어쩔수 없다.
또 있다. 만약 이 사람의 보유 부동산 시세가 올라서
내년에는 과세 대상이 되어버린다고 하면,
이 사람은 순순히 받아들일것인가?
받아들인다고 해도 부담은 고스란히 세입자에게 돌아간다.
전세 보증금을 올리거나, 전세를 월세로 전환하거나 하는 방법으로.......
(이 경우는 금년에도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물론 정책제안자들이 바보는 아닐테니, 대책을 강구해 두었겠지만,
그런 대책을 말 뿐인 채로 남겨두기 보다는
실질적으로 구속력을 가지도록 법제화하는 방안도 구상해 보았으면 한다.

결론은............
뭐 나 역시 못 가진자에 속하고, 신분 또한 백수인지라
내 생각이 정책제안자들에게 전해지지도 못 할 것이고,
내 생각에 동의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어쨌든 결론은 이번 종부세 정책에는 적극적으로 찬성하며
이것이 국민 모두가 잘사는 대한민국이 될 수도 있는
방법의 첫 걸음이 되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정치인들이 날이면 날마다 노래하지 않는가?
국민들이 원한다면, 국민 모두가 바란다면............
나 뿐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국민 모두가
잘사는 나라 국민이 되기를 원하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정치인들이나 정부 공직자들이 도와주지 않을까?
그냥 소박한(?) 바램이다....

by 홍비홍신랑 | 2007/03/16 15:55 | 트랙백 | 덧글(0)

사서(史書)편찬 형식에 대하여...2

1번글보다 조금 더 자세하기에 중복되는 내용도 있지만
보충개념으로 하나 더 싣는다.

전통시대 역사서는 크게 '정사(正史)'와 '야사(野史)'로 구분되는데,
국가에서 편찬한 관찬(官撰) 사서면 정사요, 순수한 개인이 편찬한 사서라면 야사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편찬체제는 대개 일정한 형식을 갖추고 있으며, 보통 4가지 정도의 방법이 동원되었다.
바로 '기전체(紀傳體) · 편년체(編年體) ·
기사본말체(紀事本末體) · 강목체(綱目體)'가 그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기전체(紀傳體)'는 군주가 행한 정사를 중심으로 한 기사를 적은 '본기(本紀)',
신하들의 개인 전기에 해당하는 '열전(列傳)'이 중심이 된다.
따라서 본기의 '기'자와 열전의 '전'자를 따와 기전체라 이름한 것이다.
또한 정사에 많이 이용된 체제이기에 '정사체(正史體)'라 불리기도 한다.
여기에는 본기와 열전만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군왕별 '세가(世家)'와 제도·문물·천문현상 등 국가 운영에 필요한 여러 내용을 분류한 '지(志)',
그리고 '연표(年表)'가 통상 추가된다.
기전체는 군주와 신하, 그리고 통치체제를 '본기'와 '열전', '지'의 체제로 나누어
3원칙으로 파악하는 역사 기술 방법이기에
역사를 총체적으로 파악하는 데에는 불편함이 있지만,
내용에 따라 분류되어 있다는 점에서 참고하기가 쉽다는 장점이 있다.
기전체의 모범을 보인 것은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이다.
그후 반고(班固)가 「한서(漢書)」를 편찬할 때에도 이를 본받았다.
이후 중국 역대 왕조의 역사를 담은 「이십오사(二十五史)」 역시 기전체로 서술되었다.
우리 나라에서 기전체의 모범을 보인 것은
김부식(金富軾)이 편찬한 「삼국사기(三國史記)」이다.
고려초기에 「삼국사(三國史)」가 기전체로 편찬되었다고는 하나 현재 남아 있지 않다.
또한 조선초기의 「고려사(高麗史)」도 전형적인 기전체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삼국사기」나「고려사」가 관찬 사서인 데 반하여,
조선후기에는 개인적으로 사서를 편찬하면서도 기전체의 형태를 취한 것이 많다.
그러므로 기전체라 하여 꼭 정사에만 쓰이던 것은 아니었다고 할 수 있다.

다음은 '편년체(編年體)'이다.
역사 기록을 연월일 순으로 기록하는 체제이다.
흔히 우리가 매일 쓰는 일기와 같은 형식이다.
동양에서 가장 보편적이고, 오래 된 역사 서술 방식이기도 하다.
현존하는 편년체 사서 중에서 가장 오래 된 것이 「춘추(春秋)」이다.
이는 공자(孔子)가 춘추시대 노(魯)나라 연대기를 중심으로
대의명분에 입각한 필법을 구사했기에
'춘추필법(春秋筆法)'이라 하여 직필(直筆)의 대명사처럼 인용되기도 한다.
그후 후한(後漢) 때 순열(荀悅)의 「한기(漢紀)」가 편년체로 씌어졌고,
송(宋)나라 때 사마광(司馬光)이 「자치통감(資治通鑑)」을 편찬하고부터
편년체로 서술된 사서가 가장 많이 읽히는 사서로 발전하였다.
우리 나라 사서에도 일찍부터 편년체가 도입되어,
삼국시대 각국에서 편찬한
「신집(新集」「서기(書記)」「국사(國史)」 등도 편년체라는 주장이 있다.
조선시대 정도전(鄭道傳)·정총(鄭摠)의 「고려국사(高麗國史)」도 편년체로 편찬되었으나,
김종서(金宗瑞)·정인지(鄭麟趾)가 수정하는 과정에서 「고려사」는 기전체로 편찬되었다.
편년체의 가장 대표적인 것은 '실록(實錄)'이다.
이는 중국의 경우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는데,
수(隨)·당(唐) 시대에 역사를 전담하는 기관인 사관(史館)을 설치하여,
각 왕의 실록을 여러 사관(史官)들이 분찬의 방식으로 편찬할 때부터 편년체로 기술되었던 것이
고려와 조선에도 이어졌던 것이다.
편년체는 기사를 연월일 순으로 나열하기 때문에 편찬이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역사를 분산시키지 않는다는 장점도 있다.
그러나 연대가 정확하지 않는 기사를 편찬할 수 없다는 약점을 동시에 가진다.
그리고 역사를 구조적으로 이해하기는 어렵다는 점도 커다란 결점이라고 할 수 있다.

세번째는 '기사본말체(紀事本末體)'이다.
글자 그대로 기사의 본말을 기록한 것으로, 하나의 사건을 이야기식으로 전개하여 끝을 맺고,
또 다른 이야기가 시작되는 형태를 취한 것이다.
예컨대, 일연(一然)이 지은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보면,
첫머리에 '단군신화(檀君神話)'에 대한 기사가 수록되어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곰과 호랑이가 나타나는 신화의 내용들이 이야기식으로 서술되어 있는 것이다.
이는 남송(南宋) 때의 원추(袁樞)가
「통감기사본말(通鑑紀事本末)」이라는 사서를 쓰면서 시작된 체제이다.
이는 「자치통감」 내용을 사건별로 알기 쉽게 하기 위해 고안한 것이었다.
기존의 기전체는 하나의 사건에 관한 내용들이 본기·세가·열전·지 등에 나누어져 기록되어 있어
읽는 사람이 보기에 불편하고, 편년체는 날짜별로 서술되어 있기 때문에
한 사건의 기록이 일목요연하지 못하다는 점이 있었다.
이런한 단점들을 보완한 체제가 기사본말체이니, 가장 발전된 역사 서술체제라고 하기도 한다.
특히 정치적 사건의 전모를 밝히는 데는 아주 요긴한 서술방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조선시대 여러 사건들을 종합 정리한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의 경우,
본집(本集)과 속집(屬集)이 사건별로 기사를 모아 놓은 것이어서
실록을 보는 것보다 훨씬 편리한 점을 들 수가 있겠다.

마지막으로 '강목체(綱目體)'이다.
큰줄거리의 역사를 '강(綱)',
이에 대한 구체적으로 서술한 내용을 '목(目)'으로 구분하여 기술하는 체제를 말한다.
그런데 큰 줄거리인 강을 보면, 편년체의 형식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강목의 형식으로 편찬된 최초의 사서로는 「춘추」를 꼽는다.
편년체의 모범을 보인 동시에 강목체의 형태를 취하기 때문이다.
춘추필법으로 유명한 「춘추」는 내용이 간결하여,
이를 보충하는 '춘추삼전(春秋三傳)'이라 일컫는 주석서들이라고 할
「좌씨전(左氏傳)」「공양전(公羊傳)」「곡량전(穀梁傳)」등이 이어 나왔기에,
전자를 강, 후자를 목으로 본 것이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 강목체의 역사 서술은
송나라의 주희(朱熹)의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에 의해 체계가 잡힌 것이나 다름없다.
이는 성리학을 일으킨 주희 자신이 사마광의 「자치통감」을
성리학적인 윤리와 도덕으로 기준삼아 재구성한 것이다.
이렇듯 강목체의 역사 서술에서 강조되는 것은 춘추필법의 대의 명분이다.
이것은 동시에 명분에서 벗어나는 간웅(姦雄)·난신(亂臣)을
내치고 응징하려는 뜻이 강하게 반영된 것이다.
따라서 정통과 명분에 입각한 선악 판단의 기준이 명확하게 제시되어야 하는 역사 서술이다.
우리 나라에는 고려시대 「본조편년강목(本朝編年綱目)」이라는 사서가 있었다고 하지만,
전해 내려오지 않으므로 알 수가 없다.
그후 강목체는 조선후기 성리학이 절정에 달했을 때 역사 서술 방법으로 많이 동원되었고,
「여사제강(麗史提綱)」「동사강목(東史綱目)」등이 대표적이다.

출처 : 박홍갑 著 「사관(史官)위에는 하늘이 있소이다」

by 홍비홍신랑 | 2007/03/15 12:51 | 공부하세요!!! | 트랙백 | 덧글(0)

사서(史書)편찬 형식에 대하여...1

기전체 [紀傳體] 

요약
역사사실을 서술할 때 본기(本紀)·열전(列傳)·지(志)·연표(年表) 등으로 구성하여 서술하는
역사서술의 체재.

본문
가장 중요한 본기·열전의 이름을 따서 기전체라고 하였다.
전한(前漢)의 사마천(司馬遷)이 쓴 《사기(史記)》에서 시작되었으며,
그뒤 중국의 정사(正史)를 서술하는 기본체재가 되었다.
한국에서는 고려 초기에 지었다는 《삼국사(三國史)》가 전하지는 않으나,
<단군본기(檀君本紀)>나 <동명왕본기(東明王本紀)> 등이 담겨있다고 하는 것으로 봐서
기전체로 서술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뒤를 이어 김부식(金富軾)의 《삼국사기》와
조선시대 관찬사서인 《고려사》가 이 체재로 편찬되었다.
그뒤 개인 학자로서는 16세기 말 오운(吳澐)의 《동사찬요(東史纂要)》,
17세기 후반 허목(許穆)의 《동사(東事)》,
18세기 후반 이종휘(李鍾徽)의 《동사(東史)》 등이 이에 해당된다.
기전체는 한 왕조의 통치자를 중심으로 하여
여기에 속한 신하들의 전기·통치제도·문물·경제실태·자연현상 등을 분류, 서술하여
왕조 전체의 체제를 이해하기에 편한 역사서술이므로 중국·한국의 정사체제로서 자리잡았다.


편년체 [編年體] 
요약
연월(年月)에 따라 기술하는 역사편찬의 한 체재(體裁).

본문
중국의 《춘추(春秋)》 《좌씨전(左氏傳)》이 이런 체재의 원초형태(原初形態)라고 한다.
그러나 기전체형식(紀傳體形式)에 대하여 의도적으로 이러한 기술방식을 처음 사용하게 된 것은
후한대(後漢代)의 순열(荀悅) 편저의 《한기(漢紀)》에서부터이다.
그후 역대로 단대사적 편년(斷代史的編年)의 역사서가 작성되어 왔으나,
북송(北宋)의 사마 광(司馬光)에 이르러
비로소 통사(通史)로서의 《자치통감(資治通鑑)》이 편찬되었다.
이를 계승하여 이도(李燾)의 《속자치통감장편(續資治通鑑長編)》 등의
우수한 편년체의 사서 편찬이 계속되었고,
연월에 따르기 때문에 생기게 되는 기사의 분단(分斷)을 보충하기 위한 방식으로
〈기사본말체(紀事本末體)〉 형식의 사서도 편찬되었다.


기사본말체 [紀事本末體] 

요약
동양의 전통적 역사서술 체제.
글자 그대로 기사의 본말을 기록한 것으로,
하나의 사건을 이야기식으로 전개하여 끝을 맺고, 또 다른 이야기가 시작되는 형태를 취한 것

본문
사건별로 제목을 앞세우고 관계된 기사를 한데 모아 서술한다.
그 전부터 이용된 기전체(紀傳體)와 편년체(編年體)가 인물별 ·분야별이나 연대순으로 서술하여
같은 사건에 대한 기록이 흩어지거나 섞이고 중복되는 것에 비해
어떤 일의 원인과 발단, 전개과정, 후에 미친 영향까지 일관되게 서술하기 때문에
대상사건을 체계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중국 남송(南宋) 때인 12세기 말 원추(袁樞)가 《자치통감》을 활용하여
《통감기사본말(通鑑紀事本末)》을 편찬한 데서 비롯되었다.
어떤 시대를 전체적으로 개괄하기보다 특정한 문제들을 연구하고 서술한다는 점에서
좀더 근대적인 의미를 지닌다고 평가된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에 신유학(新儒學)을 바탕으로 확립되었으며,
정통(正統)의 구분과 도덕적 평가에 중점을 두던 강목체(綱目體)에 밀려
역사서술의 주류를 이루지는 못하였으며,
그 점은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여서
당대 왕조의 정치사를 정리하려는 소수의 사찬(私撰) 사서(史書)에서 채택되었다.
조선 후기에는 서문중(徐文重)의 《조야기문(朝野記聞)》과,
18세기 초 이희겸(李喜謙)이 지은 것으로 보이는 《청야만집(靑野謾輯)》에서 시도되었으나
그것들은 체계적이지 못하거나 내용이 부실하였다.
정식으로 적용된 것은
18세기 말 이긍익(李肯翊)의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책도 모두 기사본말체로 구성된 것은 아니어서,
각 왕대별로 인물별 서술이 있고 뒤에는 역대 문물제도의 유래와 변천이 주제별로 수록되었다.
그 밖에 《조야집요(朝野輯要)》가 있다.



강목체 [綱目體]

요약
큰 글씨로 쓴 줄거리 기사의 강(綱),
보다 작은 글씨로 쓴 구체적 서술의 목(目)으로 기본 틀을 이루는
편년체(編年體) 역사서술의 형식.

본문
그 시원(始源)은 공자가 쓴 노나라의 역사인 《춘추》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으나
주희(朱熹)가 사마광(司馬光)의 《자치통감(資治通鑑)》을 자료로 이용하여
《자치통감강목》을 편찬함으로써 강목체의 체계가 정비되었다.
강목형식에서는 춘추대의(春秋大義)의 명분과 전통을 중시하여
문자표기로 포폄(褒貶)을 가리는 강과 목의 구별은 성리학적인 도덕적 평가가 기준이 된다.
한국에서 강목형식 역사서로는
고려시대에 김관의(金寬毅)가 편찬한
《본조편년강목(本朝編年綱目)》이 그 시원이라 할 수 있으나
이 책은 현전하지 않아 그 내용과 형식을 알 수 없다.
조선시대에는 성리학이 크게 일어난 17세기에 이루어지기 시작하여
홍여하(洪汝河)의 《동국통감제강(東國通鑑提綱)》, 유계(兪棨)의 《여사제강(麗史提綱)》,
임상덕(林象德)의 《東史會綱)》, 안정복(安鼎福)의 《동사강목》,
민경호(閔京鎬)의 《대동사강(大東史綱)》 등이 강목체로 쓰여졌다.

<출처 : 네이버 백과사전>

by 홍비홍신랑 | 2007/03/15 12:39 | 공부하세요!!! | 트랙백 | 덧글(0)

위인 황진이? 웃어? 울어?

황진이 위인전?(클릭)

드라마 황진이....
한 번도 제대로 본 적이 없어서
자세히는 모르지만,
(사실 캐스팅도 맘에 안들었다.
하지원? 내가 좋아하는 배우이기는 하지만, 황진이역이라........@.@
김재원? 내가 싫어한다.
나중에 듣고 나선 설정도 싫었었다.
황진이도 어려서 부터 기생은 아니었다고
예전에 들었었는데......
상사병으로 죽은 도령도 사실은 짝사랑이었지
서로 사랑하다가 신분의 벽을 넘지 못한 애절한 사랑은 아니었었을껄....
자신에 대한 상사병으로 옆집 도령이 죽었는데, 관이 움직이지 않고,
이를 알게 된 황진이가 옷고름을 떼어 옆집에 주었고, 옷고름을 관위에 올리자
그제야 관이 움직였다는....온달장군과 평강공주의 일화와도 비슷한....
뭐 대충 이런 스토리였는데......
하튼 사극 작가들의 지나친 각색과 상상력.....
나에게는 흥미를 반감시키는 요소들일 뿐이다.)
제대로 본 사람들은 재미있었다고 하던데,
그 위력이 어땠는지는 위에 링크되어 있는 글이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어린이 위인전 명기 황진이......
어떻게 보면 오늘날의 연예인과도 닮아 있는 기생이라는 존재......
하지만 똑같이 부합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하는데...
당시 신분제도 상 어쩔 수 없었다고는 하지만
일종의 성매매도 겸하지 않았던가?

물론 특정직업을 비하하고자 이를 논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름난 기생이었다고는 하지만
위인의 반열에 올리는 것 까지는 조금 심하지 않을까??
왜 심하냐든지, 또는
논개를 가지고 논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논개는 실제로 기생이 아니었으나, 왜장에게 복수하기 위해
스스로 기첩에 이름을 올려 기생행세를 했다는 내용을
어디에선가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책임은 못진다..ㅡㅡ;;)

어쨌든 황진이 위인전을 읽고 자란 어린이들이
기생이 실제로 어떠했는가를 알 수 있을 만큼 자라면
자신들이 본받고자 했던 것이 도대체 무엇이었는지 헷갈리지 않을까 싶다.

윗 링크글의 댓글 중에 사회에 굴하지 않은 예술인의 표본이라.....
드라마에 너무 심취하셨던 듯...

어쨌든 이미 출판되어 버린 책을 어찌 하겠는가?
5백년 후 에는 이런 위인전들도 나올 것 같다.....

[채 스무살도 되기 전 일본과 아시아를 평정하고, 국가 경제 발전에도 크게 이바지한 "보아"]
[한국인 최초로 미국 무대 중심에서 한국을 외치고, 한국의 위상을 세계 만방에 떨친 아시아의 별 "비"]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섹시함으로 한국 사회 전체를 신드롬으로 뒤덮었던 "이효리"]

p.s 위에 열거한 가수들 안티 아님.
      정말로 쟤네들 팬임. 노래도 좋아함.



by 홍비홍신랑 | 2007/03/14 12:02 | 트랙백 | 트랙백 | 덧글(1)

경희 여총, 본질을 흐리지 마라!!

경희대 총여학생회 더이상 두둔할 수 없다.(클릭)

벌써 여러번째 포스팅이다.
이 사건에 관하여 나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저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질타와 비난을 보내는 것을 애써 외면하는 저들의 정신상태가
과연 정상인지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위에 링크되어 있는 파파울프님의 글에서 보듯이
저들은 여타 사람들이 퍼붓는 비난의 핵심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거나, 아니면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패배 또는 인생과 미래에 대한 실패로 이어진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설령, 또 그렇다고 해도 자신들이 저질러 놓은 일에 대한 책임은 져야한다.

내게는 저들이 꼴통페미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여성해방운동을 하던, 뭐 어쩌던지 간에
일단 우선해야 하는 것은
인간성과 도덕성의 회복이라는 것을 깨달았으면 한다.

"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 했다.
지들 앞가림도 못하는 것들이
도대체 무슨 학생회를 이끌고, 학교의 여학생들을 대표하고,
여성문제에 대해 간섭한단 말인가?
하루 빨리 정신을 차리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저런 것들 때문에 정작 필요한 곳에서 노력하는
여성운동가들도 욕을 먹는 것이 아닌가?
 

by 홍비홍신랑 | 2007/03/12 11:10 | 트랙백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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